고추이야기
출장이 있어 양산을 다녀 오는 길이다.
우선 양산에서 업무는 다 끝났고 이제는 창원으로 넘어가서 나머지 업무를 보면 된다. 점심을 먹고 가라는데, 업무가 업무이니 만큼 감사함만 표현하고 가는 길에 먹기로 했다. 운이 좋은 날인지 큰 도로에 접어들자마자 식당이 보인다. '돼지국밥'. 식당의 규모도 꽤 크고 일행들도 다 괜찮다고 해서 주차를 했다.
주문을 하니 '밑반찬은 셀프'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 왔다.
약간은 귀찮은 마음도 있었지만, 이미 몸은 셀프 반찬대로 향하고 있었다. 마늘도 담고 양파도 담았다. 물론 깍두기는 이미 담겨져 손에 들려져 있고, '자~ 어디보자. 이제 뭐 없나?' 좌우를 살피니 저멀리 가느다란 눈을 새파랗고 뜨고 노려보고 있는 '땡초'가 눈에 들어왔다. 나역시 질 수 없어 두 눈에 힘을 잔뜩줬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 새파랗던 눈매가 갑자기 선하고 착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빙그레 미소를 주고 받으며 2개를 접시에 담아서 돌아왔다.
어릴 때는 매운 음식을 참 싫어 했다.
그러니 당연히 땡초는 주는 이유조차도 알 수 없는 '아저씨들의 비밀음식'. 그러나 입맛도 늙어 가는지, 어느샌가 나도 땡초의 야릇한 비밀의 맛을 알게 된 아저씨가 되어 있다. 특히 따뜻한 국밥 한숟갈이 들어 가자마자 지체없이 밀어 넣는 얇게 쓴 땡초의 맛은 마치 재채기가 나올 듯 말듯한 그때의 기분처럼, 매우려고 하다가 한번 봐주고, 봐주는가 싶다가도 또 맵기 시작한다. 그렇게 강약을 조절하며 농락을 당하는 그런 맛.
아무튼 다시 제자리로 돌아 온 나는 먹기 좋게 왼손으로는 땡초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가위를 잡아 최대한 예쁘게 잘라 낸다. 손으로 고추를 이곳 저곳으로 돌려가며 잡고 잘라야 먹방 프로그램에서나 볼 듯하게 예쁘게 잘라진다. 뭐,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는 예쁘게 2개의 땡초를 잘라 접시에 담아 두었다.
그렇게 국밥과 야릇한 고추의 맛에 한 껏 취한 후, 요즘은 식후 마시지 않으면 허전한 커피를 찾았다. 또한번의 운인지, 식당 바로 옆에 이데아 카페가 눈에 들어와, 차는 그대로 두고 카페로 들어 갔다. 주문을 했다. 난 요즘 밀크티가 한참 맛있어 어딜가나 밀크티를 마신다. 음료를 주문하고 장시간 운전을 하고 가야해서 약간 애매하긴 했지만, 화장실을 다녀 오기로 했다. 다른 두 분은 괜찮은지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고 다시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그런데, 어~ 이거 왜 이러지. 아래쪽 어딘가가 따끔 거리기 시작한다. 마치 파스라도 바른 것처럼. 따금거리려고 하다가 다시 한번 봐주고, 봐주는가 싶다가도 다시 따금거리고 ... ... 그 강도가 점점 더 세어져 간다. 국밥집과는 사뭇 다르다. 이거 무언가 심각하다. 도무지 이 상태로는 운전을 해서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시 또 화장실을 간다면 초면인 일행도 있어 어떻게 생각할까 했었지만, 참고 먼 길을 가야하는 걱정보다 앞서지는 못했다. 재차 화장실로 향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여기저기 찾아봐도 딱히 마땅한 것이 눈에 띄지 않는다. 뭐, 딱히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벽에 걸려 있던 대형 두루마리에 눈이 갔다. 그와 동시에 왼손은 이미 문을 잠그고 있었다.
그런 뒤 두루마리를 몇번 둘둘 말아서는 수돗물을 한껏 적셨다. 그러고는 ... ...
3번인가를 반복하고 나니 그런대로 달래지는 듯 했다. 다시 2번정도를 더 반복하고 나서 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자리에 돌아와서는 초면인 그 일행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리 자수했다. 도둑이 제발 저리듯.
2020. 6. 16. 양산 출장길